"디자이너로서 연차가 10년쯤 되다 보니 가끔 디자이너 면접을 보는데 한 지원자가 A4파일 서너 권 정도의 포트폴리오를 들고 왔다. 거의 그가 만들었을 시안들이었다. 사실 다 모아 놓고 보면 어느 것이 시안이고 어느 것이 결과물인지 알 수가 없다. 면접이 끝나고 그에게 “작업물을 참 많이 모아두셨네요?”라고 물었더니 그 사람이 “다 아이들 같아서 버릴 수가 없어서요”라고 답했는데 그를 뽑지는 못했다. 시안을 버릴 줄 모르는 디자이너가 불러 일으키는 반향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. 오래된 친구같고 연인같은 시안들, 그냥 버렸다가는 인생의 모서리가 지워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. 그럼에도 버릴 건 버린다. 앞으로 버릴 일 투성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면 버려야만 얻는다."
“시안” ㅡ 황일선(민음사 출판그룹 사이언스북&세미콜론 아트디렉터). 디자인정글 4월호. (via pengdo)